독후 요약/ 기록 입니다.

그대로 베낀 문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 프로이트가 역동심리학을 만들다.

 프로이트는 의학 훈련과 학위를 받았지만 (1881년) 의사보다는 과학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노력에도 당시 반유대인 풍조 탓에 그는 대학에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가 연구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에 벅찼던 이유도 있다.

그는 자신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이 개업을 했다. 그러나 개업 후에도 신경학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개업을 한 것은 어찌 보면 그가 역동심리학을 창출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즉 환자들과 접촉을 하는 동안에 그는 심리학적 시각으로 생각하도록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개업할 당시 그는 신경증 치료를 전공했는데 당시 신경학은 그리 발달하지 못하였고 신경쇠약을 앓는 환자들에게 별다른 치료법이 없었다.

(신경쇠약에 전기충격 등이 사용되던 때인가?)

반면 장 샤르코 박사(프랑스인)는 특히 히스테리 환자 치료에 최면술을 도입하여 성과를 보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장 샤르코에게 1년간 최면술을 배웠다. 그러나 최면술은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고 발병 원인의 심층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요세프 브로이어 박사(오스트리아 빈)에게 '문제를 말로 토해내는 방법', 즉 감정배설법을 배웠다. 환자는 말로 이야기하고 의사는 듣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 '말하는 치료', 즉 자유연상법 (free association)을 응용해 행태 속에 숨은 원인을 알아내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는 환자들의 심층 심리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환자들의 마음에 어떤 역동적 힘이 작용하여 이상 증상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진정한 심리의 과학적 접근, 과학적 관점)

그렇게, 프로이트는 마음속에서의 가장 강력한 힘이 무의식(Unconscious)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이트에게는 이것이 전환점이 되어 생리학, 신경학을 제쳐두고 심리적 탐구자로 전환하고 있었다. 그의  환자들이 하는 말들은 실험 데이터가 되었고, 더불어 프로이트의 그것을 관찰하는 과학적 자세가 역동심리학을 만들었다.

 

 1890년대에 프로이트는 환자들로부터 얻어낸 자료를 검증하고자 자신의 무의식의 역동을 찾고, 자기 분석을 행하기 시작했다: 꿈, 떠오르는 모든 생각에 대한 깊은 반성... 그는 환자들과 자신으로부터 얻은 지식을 가지고 퍼스널리티의 이론데 대한 기초를 잡았다.

 

 훗날 그는 "나의 생애는 하나의 목표에만 쏠린 것 같다. 그것은 정신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힘들이 작용하고 또 반작용하고 있는지 하는 것들을 추리하고 생각해내는 일이었다....."라고 회상하고 있다.

 

#꿈의 해석 The Interpretation of Dreams , 현대의 가장 위대한 저작 중 하나인 이 책은 단지 '꿈'에 대해 설명한 책의 범주를 넘어 인간 심리의 역동적 고찰이다. 이 책은 출간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프로이트는 그 뒤 10년 동안 작품을 쏟아냈다. 1904년,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 The Psychopathology of Everyday Life를 출한하는데, 이 책에서 그는 실언, 실수, 사고내기, 기억력 장애 등이 모두 무의식의 동기와 관계가 있음을 제시하였다.

 

 그는 1909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클라크 대학 창립 기념일에 연사로 초청받는 등 학문적 평가를 받게 되고 점점 더 인정받게 되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의 정신분석은 문학, 예술, 종교 등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에까지 영향력을 미쳤다.

 

 프로이트의 업적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는 절대 그가 자신이 애써 연구한 결과에 안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비롯해 동료들의 새로운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그는 자신의 이론을 확대하거나 수정했다. 

예컨대 그가 일흔 살이 되던 1920년, 그는 몇 가지 기본 견해를 변경해야만 했다. 그는 동기에 대한 학설을 수정하고 불안에 대한 해석을 정반대로 뒤집었으며 이드, 자아, 초자아에 기초를 둔 퍼스널리티의 새로운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변화를 싫어하기 마련인데 그는 그런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학문에 있어서 맹신은 지적으로 무능해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는 일찍부터 깨달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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