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 요약/ 기록입니다.

그대로 베낀 문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 자아 (Ego)

 

 이드는 충동적 행동(본능적/원시적)과 이미지 형성(원망 충족), 이 두 가지 방법으로 긴장을 완화한다. 하지만 이 방법들은 욕구 충족이 힘들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긴장(고통)을 초래하기도 하며 생존/생식보다 높은 진화론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결국 인간은 욕구충족을 위해 처한 환경을 살펴보게 된다. 인간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환경에 순응하거나 또는 그것을 지배하려고 한다.

이러한 인간과 세계의 상호관계를 맺으려면 '자아'라는 심리적 기구가 필요하다.

 

자아는 쉽게 말해 성격의 집행기관이다. 자아는 이드(충동적/본능적 행동)와 초자아를 다스려 총체적 인격과 장기적 욕구를 이룬다. 하지만 자아가 이드나 초자아의 너무 많은 양보를 바라다보면 부조화와 부적응이 뒤따르게 된다.

 

자아는 욕망을 충족 시킬 수 있는 실제 대상이 나타날 때까지 에너지의 배설을 연기한다(현실 원칙).

[에너지의 배설-> 쾌락 추구(이드의 행동 또는 원망충족을 통해 배설되는 것)] 현실 원칙<=>쾌락추구

따라서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곧장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현실이 무르익을 때까지 흥분과 긴장을 참는 것. 

결국 현실 원칙도 약간의 불쾌감을 참아야 한다.

 

자아를 위한 현실 원칙은 2차적 과정에 의해 작동한다.

1차적 과정이 단지 '인간이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한 대상을 찾는 것'까지만이라면, 2차적 과정'그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손에 넣는지' 까지다. '문제 해결' 또는 '문제 판단'이라는 말과 비슷하며, 이는 엄밀한 계획과 실천을 통해 현실을 찾거나 만드는 일이며, 사고력과 인식력이 동원된다.

현실성 진단: 계획을 잘 실천하기 위해 알아보는 것. 이 과정을 통해 계획을 수정해나가며 적절한 실천을 찾고 긴장이 해소되게 한다.

 

2차적 과정(ego)은 1차적 과정(id)과는 달리 주관적/객관적 세계를 구분할 수 있다.

=1차적 과정(사막의 오아시스:신기루. 구별하지 못함) ,

2차적 과정(사막의 오아시스라는 주관적 마음을 구별. 대상과 대상의 이미지 간 확실한 구분 가능)

 

내면세계보다 외면 세계가 삶에서 더 중요하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2차적 심리 과정이 생겨 인지, 기억, 사고 행동의 심리적 과정의 작용이 발달하게끔 자극을 받는다. 이런 인지 계통이 발달하면 외부 세계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여 어떻게 해결할지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감각 기관을 통한 정보 외에도 기억 계통에 보존된 정보를 사고를 통해 이용할 수 있게 한다. 기억력을 잘 연결하고 조직하여 사람의 판단력을 더욱 예리하게 한다.

 

2차적 과정에서는 또한 운동 계통의 능력 향상이라는 중요한 변화가 있다. 심리 기능의 발달로 인해 사람은 근육을 더욱 기술적으로 다뤄 복잡한 동작을 해낸다. 결국 심리 기능의 발달은 사람을 더욱 슬기롭고 효율적으로 행동하게 하는데, 이것은 보다 큰 만족감과 기쁨을 주고, 어떻게 보면 자아는 이드와 외부 세계 사이에 중간 역할을 하는 심리 과정이다.

 

자아는 그러나 1차적 기능과정처럼 오직 쾌락 원칙의 지배를 받고 있는 듯할 때가 있는데 이것은 환상과 백일몽을 만드는 기능과 같다(오락/쾌락적 상상). 그러나 1차와 구별되는 것은, 현실은 결코 오진하는 일이 없으며 다만 자아가 열심히 일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한다고 보면 된다.

 

자아는 비록 외부 세계와의 상호 관계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유전적 요인이 작용하고 자연법칙에 따른 성장을 한다.

다만 자아의 이러한 잠재력에 대한 실현은 인간의 경험, 훈련, 교육 등에 의해 강화되는 것이다.

 

[결론]

2차적 과정 자아(Ego)는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을 통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충동을 다뤄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할 수 있게 하는 심리적 발달이다. (1차적 과정만으로는 원하는 것을 늘 얻을 수는 없기 때문에 발달했다.) 따라서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행동하지 않으며 현실적인 판단에 의해 불편함과 긴장을 조금 참더라도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여러 감각 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보존된 기억을 조합하고 취합하여 상황을 예민하고 빠르게 판단한다.

2차적 과정의 이유는 결국, 효율과 더 큰 만족감을 위해서이다.

독후 요약/ 기록입니다.

그대로 베낀 문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3. 프로이트는 어떤 사람인가

 

직업으로 보자면 프로이트는 의사였고 오늘날 그는 정신의학자로 불리고 있다. 즉 그는 학자이며 또한 현대 정신의학의 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의학자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그의 목적은 사실 '우주의 수수께끼를 푸는 일'이었다. 그것을 위해 의사가 된 것이고 과학을 배웠던 것이다. 그는 젊어서는 의학도로 여러 병원에 관계하며 인간의 생리현상에 대해 연구를 했다. 그러면서 (1단계) 관찰-데이터 수집-실험-결과- 해석을 하고 (2단계) 더욱 진전된 관찰-추리 등의 방법을 익혔다. 이런 그의 과학적 방법은 생리학자로서는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지 모르나, 바로 이 과학적 방법을 토대로 그는 훌륭한 이론을 주장할 수 있었다.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차이에 대해서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의 한 분과이며 하부구조 내지는 전적으로 기초가 되는 학문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정신분석학은 퍼스널리티의 이론이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또한 정신 치료의 한 방법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에게 정신분석의 치료적 측면은 과학과 멀게 보길 원했으므로 우리는 그의 정신분석학을 심리학적 이론 체계로 보는 것과 정신 치료의 방법론으로 보는 것으로 구분해야 할 것이다.

 

그는 의사이자, 정신과 의자, 과학자이자 심리학자였고 더불어 그는 철학자였다. 19세기를 살던 과학자에게 철학은 낯선 주제가 아니었다. 당시 과학은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괴테는 19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존재였고 프로이트 역시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프로이트의 철학은 사회적, 인간적인 것에서 출발한 것으로, 그는 생명 철학의 신봉자였다. 그는 오직 과학적 탐구와 실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지식으로 얻은 인간에 대한 철학(다시 말해, 생명철학)이 바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참다운 지식을 준다고 믿었다.

(생명철학=사회적, 인간적인, 과학탐구를 통해 얻은 지식의 철학:과학철학) 

그는 인간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단지 과학적인 세계관을 넓혀가면 된다고 믿었다. 

 

 인간성에 대한 자신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그는 이따금 비관적이고 비판적인 자세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 속에는 비이성적인 요인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의성의 힘은 맥을 못 추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를 모르고 있음을 그는 개탄했다. 너무 많은 환자들이 논리와 이성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즉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프로이트 저, 환상의 미래 The Future of an Illusion)

 

프로이트는 사회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는데, 그는 인간을 반영하는 사회 역시 비합리적이고, 따라서 새로 탄생하는 세대들은 그런 사회에 살며 부패하고, 그 결과 인간-> 사회, 사회-> 인간에 대한 영향은 서로 악순환으로 작용한다.

결국 단지 몇몇 괴짜들만이 오히려 자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는 역설이 나온다.

 

프로이트는 아이들에게 심리학의 원칙을 응용함으로써 사회가 부패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아동심리학?) 즉 부모와 교사는 심리학 교육을 받고 이성과 진리를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쉽지는 않지만 보다 나은 사회,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수라고 그는 생각했다.

(프로이트 저, 문명 속의 불만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

 

[결론] 프로이트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에 대한 답을 해보자면 그는 의사, 정신과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심리학자, 철학자, 비평가라고 할 수 있으나 이런 나열이 그를 전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천재'라는 용어야 말로 프로이트에게 꼭 어울리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독후 요약/ 기록 입니다.

그대로 베낀 문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 프로이트가 역동심리학을 만들다.

 프로이트는 의학 훈련과 학위를 받았지만 (1881년) 의사보다는 과학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노력에도 당시 반유대인 풍조 탓에 그는 대학에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가 연구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에 벅찼던 이유도 있다.

그는 자신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이 개업을 했다. 그러나 개업 후에도 신경학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개업을 한 것은 어찌 보면 그가 역동심리학을 창출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즉 환자들과 접촉을 하는 동안에 그는 심리학적 시각으로 생각하도록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개업할 당시 그는 신경증 치료를 전공했는데 당시 신경학은 그리 발달하지 못하였고 신경쇠약을 앓는 환자들에게 별다른 치료법이 없었다.

(신경쇠약에 전기충격 등이 사용되던 때인가?)

반면 장 샤르코 박사(프랑스인)는 특히 히스테리 환자 치료에 최면술을 도입하여 성과를 보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장 샤르코에게 1년간 최면술을 배웠다. 그러나 최면술은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고 발병 원인의 심층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요세프 브로이어 박사(오스트리아 빈)에게 '문제를 말로 토해내는 방법', 즉 감정배설법을 배웠다. 환자는 말로 이야기하고 의사는 듣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 '말하는 치료', 즉 자유연상법 (free association)을 응용해 행태 속에 숨은 원인을 알아내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는 환자들의 심층 심리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환자들의 마음에 어떤 역동적 힘이 작용하여 이상 증상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진정한 심리의 과학적 접근, 과학적 관점)

그렇게, 프로이트는 마음속에서의 가장 강력한 힘이 무의식(Unconscious)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이트에게는 이것이 전환점이 되어 생리학, 신경학을 제쳐두고 심리적 탐구자로 전환하고 있었다. 그의  환자들이 하는 말들은 실험 데이터가 되었고, 더불어 프로이트의 그것을 관찰하는 과학적 자세가 역동심리학을 만들었다.

 

 1890년대에 프로이트는 환자들로부터 얻어낸 자료를 검증하고자 자신의 무의식의 역동을 찾고, 자기 분석을 행하기 시작했다: 꿈, 떠오르는 모든 생각에 대한 깊은 반성... 그는 환자들과 자신으로부터 얻은 지식을 가지고 퍼스널리티의 이론데 대한 기초를 잡았다.

 

 훗날 그는 "나의 생애는 하나의 목표에만 쏠린 것 같다. 그것은 정신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힘들이 작용하고 또 반작용하고 있는지 하는 것들을 추리하고 생각해내는 일이었다....."라고 회상하고 있다.

 

#꿈의 해석 The Interpretation of Dreams , 현대의 가장 위대한 저작 중 하나인 이 책은 단지 '꿈'에 대해 설명한 책의 범주를 넘어 인간 심리의 역동적 고찰이다. 이 책은 출간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프로이트는 그 뒤 10년 동안 작품을 쏟아냈다. 1904년,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 The Psychopathology of Everyday Life를 출한하는데, 이 책에서 그는 실언, 실수, 사고내기, 기억력 장애 등이 모두 무의식의 동기와 관계가 있음을 제시하였다.

 

 그는 1909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클라크 대학 창립 기념일에 연사로 초청받는 등 학문적 평가를 받게 되고 점점 더 인정받게 되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의 정신분석은 문학, 예술, 종교 등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에까지 영향력을 미쳤다.

 

 프로이트의 업적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는 절대 그가 자신이 애써 연구한 결과에 안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비롯해 동료들의 새로운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그는 자신의 이론을 확대하거나 수정했다. 

예컨대 그가 일흔 살이 되던 1920년, 그는 몇 가지 기본 견해를 변경해야만 했다. 그는 동기에 대한 학설을 수정하고 불안에 대한 해석을 정반대로 뒤집었으며 이드, 자아, 초자아에 기초를 둔 퍼스널리티의 새로운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변화를 싫어하기 마련인데 그는 그런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학문에 있어서 맹신은 지적으로 무능해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는 일찍부터 깨달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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